
우연히 시작된 인연
믹싱 의뢰를 받았는데 처음으로 페이를 받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참고 글: 믹싱 엔지니어로 성장 중인 나의 이야기 (2024)
몇 년 전, 저는 온라인에서 우연히 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발견했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느낌이 있었습니다. 음악을 들은 순간, “이 사람의 음악은 조금만 정리하면 정말 좋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저는 믹싱 포트폴리오를 쌓고 있던 시기였고, 당시 제 믹싱 실력에도 나름의 자신이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지금은 상황이 어렵지만 나중에 연락드릴게요”라는 답장이 왔고, 저는 거절당한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그 사이 저는 회사를 다니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아티스트로부터 뜻밖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다음 달쯤 믹싱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연락이었고, 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수락했습니다.
회사와 믹싱, 투 잡
당시 저는 꽤 먼 거리의 직장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출근길은 1시간 20분이 걸렸고, 퇴근 시간엔 배차가 맞지 않아 두 시간이 넘게 걸릴 때도 있었습니다. 출퇴근 시간만으로도 하루 에너지가 많이 소모됐고, 회사에서는 공연을 준비하거나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많아 정신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듣고, 세션을 열고, 하나씩 다듬어 나가는 그 과정은 저에게 유일한 취미활동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이 출퇴근의 고통을 그나마 덜어주었습니다…
세션을 처음 받아보았을 때, 곡은 R&B 스타일이었습니다. 제가 평소에도 즐겨 듣고 작업하고 싶은 장르였기에,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컸습니다. 당시에는 비교적 깔끔하고 정돈된 사운드를 선호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름대로 모던하고 깨끗한 방향으로 믹스 초안을 마무리해서 아티스트에게 전달드렸습니다.
진짜 작업은 믹싱 초안 작업 후 피드백 부터 입니다.
아티스트 및 프로듀서분들이 공감하는 것은 믹스를 수정하는 것이 정말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티스트가 원한 방향은 조금 달랐습니다. 더 많은 리버브, 더 강한 저음, 조금 더 ‘웻’하고 묵직한 느낌을 원하셨습니다. 처음엔 솔직히 조금 당황했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밸런스가 무너지는 방향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가면 믹스가 너무 무거워질 수도 있고, 각 요소들이 서로를 덮어버릴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 역시 어린 시절 힙합을 좋아했고, 두꺼운 킥과 리버브 가득한 스네어 사운드에 빠져들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결국 이상적인 사운드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 곡이 품고 있는 감정과 메시지를 얼마나 잘 담아내는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티스트가 원하는 사운드에 100% 맞추기로 했습니다.
믹싱은 아티스트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최대한 왜곡 없이, 혹은 더 잘 드러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많은 수정이 오갔지만 저는 그 사실을 이 작업을 통해 더 깊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의뢰인과 작업자는 둘 다 좋은 레퍼런스를 들어야 합니다. 무손실 음원으로 모니터링 하는 것이 좋은데 가장 좋은 접근성을 가진 사이트가 애플뮤직입니다. 기본적으로 무손실 음원 설정이 꺼져있으니 설정창으로 들어가서 설정해야합니다.
수십 번의 수정 요청은 본인 음악에 대한 애정입니다
믹스가 완성되어 가는 동안, 아티스트는 다양한 피드백을 주셨고 수정 요청도 많았습니다. 어떤 작업자라면 번거롭게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오히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음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얼마나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지인의 연습실에서 만나 직접 사운드를 체크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날은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고, 회사에서도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난 직후였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쳐 있었지만, 음악을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고 함께 사운드를 다듬어 나가는 과정에서 묘한 집중과 몰입이 생겼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저도 아티스트였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동료였습니다. 믹싱 의뢰라는 단어가 단지 거래의 의미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진짜 협업과 신뢰의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무료로 시작된 작업, 그러나 예상치 못한 선물
이 작업은 처음부터 무료로 진행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 당시에는 믹싱 의뢰를 받을 일이 거의 없었고, 좋은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종본을 전달한 며칠 후, 갑작스럽게 카카오톡으로 입금 알림이 떴습니다.
저는 그분이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음악을 본업으로 하지 않더라도, 퇴근 후 시간을 쪼개어 음악을 만드는 사람. 그런 분이 주신 돈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믹싱 의뢰라는 것이 단순한 기술적 서비스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의 진심을 다룰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신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요.
마무리하며
믹싱을 맡긴다는 것은 아티스트에게 있어 꽤 큰 결정입니다. 자신의 작품, 자신의 감정, 자신의 시간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믹싱 의뢰를 받는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책임과 진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첫 작업을 통해, 믹싱이 단순한 오디오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지금도 누군가의 믹싱 의뢰를 받을 때마다, 그 초심을 떠올리며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믹싱 의뢰를 고민하고 계신 아티스트 분들께, 그리고 저와 같은 믹싱 엔지니어 분들에게도, 이 경험이 작은 용기와 원동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 글: 믹싱 전 음악 퀄리티를 높이는 창작자 필수 가이드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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